초록빛 융단이 깔린 듯한 논밭을 지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시간의 흐름이 더디게 느껴지는 우붓의 한 공방에 다다릅니다. 플루메리아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이곳에서, 저는 발리의 오랜 지혜가 담긴 전통 바틱 염색을 체험했습니다. 단순히 천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넘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삶의 무늬를 새겨 넣는 명상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의 한 조각을 예약하는 법: 바틱 클래스 참여 방법
발리, 특히 예술가의 마을이라 불리는 우붓 곳곳에는 여행자를 위한 바틱 공방이 많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리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날짜와 시간의 수업을 예약했습니다. 현지에서 직접 공방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지만, 인기 있는 곳은 예약이 빨리 마감되니 미리 계획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온라인 예약: 클룩(Klook), 에어비앤비 트립(Airbnb Trips)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가격과 프로그램을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면 공방의 분위기나 선생님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현지 예약: 우붓 시내를 걷다 보면 'Batik Class' 라고 쓰인 작은 간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접 방문해서 작품들을 구경하고 상담 후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소요 시간 및 비용: 보통 3시간에서 반나절 정도 소요되며, 디자인이나 천의 크기에 따라 비용은 달라집니다. 제가 참여한 클래스는 약 4~5만 원 선이었습니다.
촛농과 염료, 그 사이에서 길어 올린 인내
공방에 들어서자, 쿰쿰하면서도 달콤한 촛농 냄새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제 앞에는 새하얀 천 한 장과 '찬팅(Tjanting)'이라 불리는 뾰족한 도구가 놓여 있었습니다. 먼저 연필로 천 위에 원하는 문양을 스케치합니다. 발리의 전통 문양부터 자유로운 현대적 디자인까지, 무엇을 그려도 좋습니다. 저는 여행 중에 보았던 열대의 잎사귀를 그려 넣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가장 중요한 '찬팅' 작업입니다. 녹인 촛농을 찬팅에 담아 스케치 선을 따라 섬세하게 그려나가는 과정입니다. 숨을 참고 집중해야만 촛농이 번지지 않고 고운 선을 만들어냅니다. 뜨거운 촛농이 천에 스며들며 하얀 선을 남기는 순간, 제 마음속 복잡한 생각들도 함께 굳어버리는 듯한 평온함이 찾아왔습니다. 삐뚤빼뚤, 서툴지만 한 선 한 선 이어가며 무늬를 완성해 나갔습니다.
촛농으로 그린 선은 염료가 스며드는 것을 막아주는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이제 붓을 들어 원하는 색의 염료로 천을 물들일 차례입니다. 파란색, 초록색, 붉은색 염료가 하얀 천 위로 번져나가며 생명을 얻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여러 색을 겹쳐 칠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저만의 색 조합을 만들어냈습니다.
염색이 끝나면 뜨거운 물에 천을 담가 촛농을 녹여냅니다. 굳어있던 촛농이 녹아 없어지면, 그 자리에 하얀 선의 무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햇볕에 천을 널어 말리면, 발리의 태양과 바람, 그리고 저의 이야기가 담긴 바틱이 완성됩니다.
미소와 손짓으로 나눈 대화
수업을 진행해준 현지인 선생님 '께뚯'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찬팅을 다루는 것을 서툴러하자, 그는 자신의 손을 제 손 위에 포개어 부드럽게 움직이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바틱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우리는 온전히 교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 기술을 배웠다며, 바틱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발리 사람들의 삶과 기도가 담긴 기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수 세기를 이어온 전통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마지막 조언: 바틱, 그 이상의 가치
- 편안한 옷차림은 필수: 염료가 옷에 튈 수 있으니, 어두운 색의 편안한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의 공방에서 앞치마를 제공해줍니다.
- 나만의 디자인 구상: 미리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생각해가면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행의 추억이 담긴 풍경이나 상징물을 그려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결과물에 연연하지 않기: 조금 삐뚤어지고 얼룩져도 괜찮습니다. 그 서툰 흔적이야말로 이 여행의 가장 솔직한 기록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즐거움입니다.
발리에서 가져온 수많은 기념품 중에, 저는 제가 직접 만든 이 바틱 천을 가장 아낍니다. 이 천을 볼 때마다 우붓의 햇살, 촛농 냄새, 그리고 께뚯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바틱 체험은 단순히 아름다운 천 한 조각을 만드는 것을 넘어, 여행의 한 순간을 내 손으로 붙잡아 영원한 무늬로 새기는 일이었습니다. 여행이란 어쩌면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무늬를 그려나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